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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정본부장
 
  똑똑해도 튀지 않는여성
  
 작성자 : 유수정
작성일 : 2004-09-02     조회 : 3,217  

우리 사회는 똑똑한 여성을 원하지만 튀지 않는 여성을 원하기도 한다. 자기일만을 성실해주고 목표를 이루는 것에 대해 큰 박수를 보내며 튀는 여성에 대해서는 오히려 수많은 적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성이 일을 잘해 그 자체만을 보고 그 조직에서 튄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 될것이다.


“똑똑해도 튀지 않는 여자라야 성공하죠.” 언젠가 한 일간지 정치부 기자와 이야기하던 중 우리나라에서 선호하는 여성정치인 은 어떤 인물이냐고 물었더니 대뜸 튀어나온 대답이다. 그러면서 그 기자는 ‘똑똑하나 튀지 않아 잘나갈 수 있는 여성 정치인’으로 한 여성장관을 들었다. 그 기자의 지적이 맞았는지 그 여성 장관은 정권이 바뀌고도 또 다른 부처의 장관을 지낸 뒤 지금은 지역구 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런 말도 들었다. “못난 놈이 잘난 척하면 애교지만 잘난 놈이 잘난 척하는 건 정말 못 봐주겠다.” 성경에도 ‘겸손은 하나님의 가장 소중한 은사’라는 구절이 있을 정도로 ‘튀지 않기’는 참 힘든 일이다. 똑똑해도 튀지 않으려면 겸손함과 함께 적응력과 순발력이 필요하다. 즉 이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얼른 파악하고 거기에 재깍재깍 대처하는 능력 말이다. 그런 점에서는 남성보다는 여성이, 미혼여성보다는 기혼여성이 이 방면에 더 나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온 가족이 외국으로 이민 갔을 때 쭉 사회생활을 해 온 아버지보다 전업주부로 집에만 있던 어머니들이 새로운 환경에 훨씬 빨리 적응하여 어려움을 잘 극복해 나가는 예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나는 이것이 우리의 ‘시집가는 문화’로부터 기인 한다고 생각한다. 낯선 집안에 한 구성원으로 들어가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아남기 위해 기혼여성들은 적응력과 순발력을 키우게 마련이다.

또한 가족들에 대한 ‘대접’이 늘 몸에 배어 있는 주부, 즉 아줌마들이 좀더 자기를 낮추는 겸손함에 익숙한 것은 당연한 일이 다. 아줌마 경영인으로서 내 경험에 의하면 기혼여성, 특히 자녀를 가진 엄마들이 내부고객과 외부고객을 잘 섬겨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능력이 뛰어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나에게는 대학을 휴학하고 게임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딸애가 있다. 딸은 클수록 엄마의 친구라지만 딸애가 직업을 게 되자 더욱 소중한 서로의 조언자가 되었다. 혼자서 게임 만들기에만 열중해 오던 딸애는 회사에 가면서 고객의 중요함을 깨닫고 마케팅을 전공하며 사업을 하는 나와 시장의 욕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 전에 딸애가 아주 작지만 매니저 역 할을 담당하게 되자 조직관리에도 관심을 보여 우리의 대화는 날로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요즘 ‘딸 없는 집안은 가운이 다했다’고 한다지만 ‘똑똑하나 튀지 않을 수 있는’ 사람됨을 평가하는 우리 사회에서 딸 가진 기혼여성이야말로 가장 경쟁력이 높은 게 아닐까. 내 경우도 동 성인 딸과의 끈끈한 유대가 사회생활의 인간관계에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나는 우리 회사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20대 중•후반 젊은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 하는데 딸애와의 수다가 아주 도움이 된다. 딸애가 아니었더라면 40대 후반의 교수인 내가 20, 30대가 주류인 e비즈니스 조직을 이끌어나가는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는 아기가 1.17명이라는 초저출산 시대를 맞아 우려가 많지만, 나는 조만간 이 문제는 잘 해결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사회적인 커리어 못지않게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여성들만이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도 크기 때문이다. 사실 자녀란 여성의 가장 귀중한 네트워크이며 인적 자산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본다. 앞으로 오히려 남편은 필요 없고 아이만 있으면 좋겠다는 여성들이 늘어날까 걱정이다.

몇 년 전 여성단체에서 주최한 신년 하례회에서 한명숙 당시 여성 부 장관의 축사 한 마디를 감명 깊게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 금년에는 여성의 발전을 위해 ‘아이 낳던 힘’을 다해 봅시다.

” 새 생명을 태어나게 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듯 최선의 노력을 하면 안 될 일이 뭐가 있을까? ‘똑똑하나 튀지 않을 수 있는’ 지혜로운 여성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의 경쟁력은 저절로 올라갈 듯하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