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 물을 떠 오너라.”
“…….”
“마실 물을 떠 와!”
“예에!”
장금은 나가서 물을 떠온다. 한 상궁은 물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말한다.
“다시 떠 오너라.”
장금은 다시 밖으로 나가 물을 떠 온다. 역시 한 상궁은 물을 마시지도 않고 장금에게 냉정하게 말한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다시 떠 오너라.”
그날 밤, 장금은 잠을 이루지도 못한 채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마마님은 왜 자꾸 물을 떠 오라고 하실까? 오늘은 친구인 창이한테 물어봐야지.”
그 다음날 창이에게 물어보았으나 창이의 상궁마마님은 물을 떠오게 하지 않는단다. 장금이는 바가지에 버들잎을 몇 장 띄워 들고 다시 한 상궁에게 간다.
떠온 물을 본 한 상궁의 대답은 한결같다.
“내일 아침 다시 떠 오너라.”
그리고 아주 냉랭한 모습으로 불을 끄고 자리에 돌아눕는다.
계속되는 황사로 궁궐의 음식들이 변질되고, 대전 수라상의 음식까지 변질되기 시작하면서 수라간은 발칵 뒤집힌다. 이때 장금은 평소에 알고 있던 지식대로 물을 끓여 음식을 하고 설거지를 하였다. 이러한 모습을 본  한 상궁이 장금에게 묻는다.
“뭘 하고 있었느냐?”
“아직 설거지를…….”
“지금 이 물을 끓여 설거지를 한 것이냐?”
“예.”
“왜?”
“토우 때문인지 우물물도 흙탕물이 되어, 물을 끓여 설거지를 하고, 물을 식혀야 식재료를 씻을 수 있기에…….”
한 상궁과 최 상궁은 깜짝 놀란다.
“그리 하라고 누가 일러주었느냐?”
한 상궁은 장금에게 다시 물었다.
“그건 아니옵고…….”
“그럼 네 스스로 알아 그리 하였느냐?”
“어머니께서 토우가 일 때면, 물이 흙탕물이 되어 음식에 흙이 씹히고 냄새가 나고 금세 쉰다고 늘 이렇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이 간단한 이치를 몰라 장마가 지고 흙비가 성할 때면 역병이 도는 거라 하셨습니다.”

한 상궁과 최 상궁은 장금의 지혜에 몹시 놀라며, 주위의 다른 나인들을 크게 꾸짖고, 바로 대비 전 소주방과 동궁 전 소주방에 이 사실을 알리고 즉각 시행토록 하였다.
이 사건이 있은 뒤 한 상궁의 처소에 함께 앉아 있는 장금이의 얼굴이 사뭇 긴장되어 있었다. 이때 한 상궁이 다시 물을 떠 오라고 한다.

“마실 물을 떠 오너라!”
“…….”
이번에는 장금이는 냉큼 일어나 물을 뜨러 가지 않는다.
“물을 떠 와.”
한 상궁은 물을 떠 오라고 다그친다. 그러나 장금은 오늘 토우를 끓여 설거지를 한 것에 대해 칭찬을 들었기에 용기를 내어 한 상궁에게 묻는다.
“어찌하여 자꾸 물을 떠 오라 하십니까? 따뜻한 물도 안 되고, 찬물도 안 되고, 나뭇잎을 띄워 와도 안 되고.”
이 질문에 한 상궁의 얼굴이 환하게 펴진다. 그리고 장금이를 지그시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시작한다.
“너는 이미 알고 있느니라!”
“……?”

궁금해 하는 장금을 바라보며 한 상궁은 묻는다.
“어찌하여 흙비를 끓였더냐?”
“어머니께서 그리 하시는 것을 보았기에…….”
“어머니께서는 왜 그리 하셨느냐?”
“혹 제가 어디 아플까 염려하시어…….”
여기까지 대답을 하던 장금은 잠시 대답을 멈추고 갑자기 뭔가 생각이 떠오른 듯이 눈빛을 반짝인다.

“아!”
이를 본 한 상궁은 지그시 웃으며 묻는다.
“물을 떠 오겠느냐?”
뭔가를 깨달은 듯 기쁘고 흥분한 표정을 지으며 장금은 되묻는다.
“혹 아랫배가 아프시지는 않으신지요?”
“아니다.”
“혹 목이 아프지는 않으신가요?”
“원래 목은 자주 아프구나.”
한 상궁의 대답을 듣자마자 장금은 조르르 나가서 약간 김이 나는 따뜻한 물을 떠 와 한 상궁에게 올린다. 한 모금 마셔보고는 흡족한 듯한 한 상궁에게 장금이는 말한다.

“따뜻한 물에 소금을 아주 조금 넣었습니다. 한 번에 들이키지 마시고, 차처럼 천천히 드세요.”
“그래, 고맙다. 어머니께서 물 한 사발 주시면서도 그리 많은 것을 물어보시더냐?”
“예. 아랫배는 차지 않은지? 목은 아프지 않은지? 꼬치꼬치 물으시고는 찬물을 주기도 하시고, 따뜻한 물을 주기도 하시고, 단물을 주기도 하셨습니다.”
“그래! 바로 꼬치꼬치 묻는 것, 그게 내가 너에게 물을 떠 오라 한 뜻이다. 음식을 하기 전, 먹을 사람의 몸 상태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받는 것과 받지 않는 것. 그 모든 것을 생각하여 음식을 짓는 마음. 그게 요리임을 얘기하고 싶었다. 허나 너는 어머니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구나. 너의 어머니는 참으로 훌륭한 분이다.”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어린 장금은 눈물을 흘린다.

“어머니께서는 ‘물도 그릇에 담기면 음식인 것’을 알고 계신 분이다. 또 그것이 음식이 되는 순간엔 먹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제일임을, ‘음식은 사람에 대한 마음’임을 알고 계신 분이었구나! 네가 그런 훌륭한 분의 딸인 것도 모르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부모 없이 자란 아이라 마음만 앞서 윗사람들 눈에나 들려는 아이로 오해를 하였구나.”
한 상궁의 얼굴에 진지함이 흐른다.

“버르장머리를 고친다는 것이 오히려 내가 한 수 배웠어.”
겸손한 한 상궁의 말에 장금은 감동하여 눈물을 주르르 흘린다.
“이제 그만 울거라! 그리고 앞으로는 울지 마라. 이 방에 처음 널 데려왔을 때 한시바삐 최고상궁이 되고 싶다는 네 말이 난 듣기 싫었다. 나는 네가 왜 그런지 모른다! 허나 맘이 약해서는 네가 그리도 빨리 되고 싶어 하는 최고상궁이 되지 못한다.”

그 말에 장금은 두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반드시 최고상궁이 되리라는 결의를 다진다.
여덟 살의 어린 장금에게 물을 떠 오게 하면서도 스스로 물을 왜 떠 오라 하는지 질문을 할 때까지 기다린 한 상궁의 인내심과 한 상궁을 끝까지 존경하는 마음으로 따르려 한 장금의 겸손한 성실성이 만나, 어느 날 질문을 할 만큼의 용기를 내게 된 두 사람 사이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전통적인 멘토링의 진수이다.

“질문을 해!”라고 한 마디만 하면 될 것을 이렇게 장금이가 스스로 깨우치게 한 한 상궁의 품성과 덕성에서 배울 점이 많다.

멘토는 멘티가 스스로 생각하고 깨우치게 하기 위하여 많은 질문을 해야 한다. 질문을 하면 멘티 스스로 성장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질문의 힘이다.